2019년 기준으로 세계 전력량의 10% 이상이 원자력에서 나옵니다. 원자력을 가장 많이 쓰는 나라는 프랑스이며 에너지의 70%가량을 원자력에서 얻습니다. 그렇지만 원자력 발전에서는 방사선 폐기물이 나오며 지금까지 미국에서 나온 폐기물만 해도 8만 톤입니다. 폐기물의 독성은 수천 년간 지속됩니다. 그리고 당면한 위험은 노심 용융입니다. 그렇게 위험하고 치명적인데 왜 우리는 아직도 핵으로 불장난을 하는 걸까요?
1938년 히틀러가 자기네 인종의 우월성을 사람들에게 설파하는 동안 유대계 화학자 리제 마이트너와 동료 과학자 오토 한 그리고 프리츠 슈트라스만은 세계를 뒤바꿀 과학적 발견을 해냅니다. 그것은 핵분열입니다.
원자는 모든 에너지를 원자핵에 저장합니다. 중성자 입자를 우라늄 원자에 쏘면 처음에 쏜 중성자의 에너지보다 200배 큰 에너지를 방출하면서 원자핵이 쪼개집니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쪼개진 우라늄 원자에서 중성자 2개가 튀어나와 더 많은 우라늄 원자와 충돌합니다. 이렇게 연쇄 작용이 일어나 방사선과 열이 발생합니다.
문제는 핵분열로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데 그것을 발견한 독일 과학자들은 강력한 무기를 만들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곧 나치 정권이 그들의 연구를 가져갑니다. 원자 폭탄을 개발하려고 말입니다. 이런 위협에 대응하여 과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1939년 8월 2일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핵분열 기술을 이용한 무기가 아주 위험할 것이라며 편지를 씁니다.
미국은 독일보다 앞서야 했습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맨해튼 계획입니다. 미국의 산업적, 과학적, 재정적 역량을 결합하고 영국과 캐나다의 도움을 받습니다. 히틀러보다 먼저 원자 폭탄을 연구, 개발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1945년 7월 16일 미국은 뉴멕시코 주의 로스앨러모스에서 첫 실험을 합니다. 그리고 한 달 후, 원자폭탄은 그 파괴적인 면모를 전장에 처음으로 드러냅니다. 8월 6일 8시 15분 목표 지점인 히로시마 상공에서 그 임무를 맡은 페러비 소령에 의해 원자폭탄이 떨어졌으며 3일 후 두 번째 원자폭탄이 나가사키에 떨어집니다.
미국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태양이 힘을 얻는 에너지원이 극동에서 전쟁을 일으킨 나라를 향해 방출된 것입니다."라며 연설을 합니다.
원자 폭탄이 일본의 두 도시에 떨어지면서 2차 세계 대전은 급작스럽게 끝이 납니다.
그리고 전후 맨해튼 계획 입안자들은 이 기술에 평화적 부산물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원자력 발전소입니다.
1950년대 초에는 이 새로운 에너지원의 가능성이 무한하다 여겨졌습니다. 원자력은 청정에너지의 안정적인 공급원이 될 것만 같았습니다. 그리고 곧 소련도 핵분열을 알아내 어느 나라보다도 먼저 완전히 가동되는 세계 최초의 원자력 발전소를 모스크바 남서쪽 109Km 지점의 오브닌스크에 건설합니다. 유럽도 그렇게 뒤처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1957년 영국 최초의 원자로 중 하나인 '윈드스케일'이 원자로에 불이 나서 15톤가량의 핵연료가 노심 안에서 녹아버린 것으로 인해서 대서특필 됩니다. 그러나 영국 정부는 사고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1년 후 1958년 미국 최초의 상업적 원자력 발전소가 펜실베니아주 시핑포트에 세워집니다.
1950년대가 끝날 무렵에는 미국과 소련에서 300회 이상의 핵실험이 진행되었습니다. 철의 장막 양쪽에서 쌓여가는 핵무기는 대중의 공포를 자극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핵이 없는 세상을 원한다며 시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핵무기뿐 아니라 원자력도 함께 폐기하자고 했습니다. 1970년대 초반까지 반대 시위와 대중의 우려에 부딪혀 원자력의 인기는 시들해집니다. 투자자들은 비용이 많이 들고 만들기도 어려운 원자력을 쓸 바에야 그냥 화석 연료를 쓰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경기 침체로 미국 달러화가 약세를 보이는 와중에 중동 지역이 혼란에 빠지면서 유가가 상승합니다.
그래서 화석 연료에 대한 관심은 줄어듭니다. 투자자들은 원자력을 다시 한번 면밀히 검토합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모든 것을 다 겁니다. 1970년과 1985년 사이에 원전 건설 붐이 일어납니다. 현존하는 전 세계 원자로의 절반 이상이 이때 만들어졌습니다.
1979년은 모든 미국인들에게 원자력의 위험성을 명확하게 보여준 해입니다. 펜실베니아주의 스리마일섬 원자력 발전소는 완화 밸브 고장으로 인해 시스템 내부에 열기가 축적되고 원자로의 노심이 가열되어 우라늄이 녹고 맙니다. 미국 최초의 노심 용융입니다. 격납 탱크 안쪽의 방사선이 주변 지역에 모두 누출됩니다. 약 2백만 명이 소량 피폭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학교가 셧다운 되고 상점 창문에는 대피명령이 떨어지면 어떻게 하라는 안내문이 붙습니다. 사망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미국 대중의 원자력에 대한 지지는 급속히 줄어듭니다.
1979년에서 1988년 사이에 미국에서 건설이 취소된 원자력 발전소는 모두 67곳입니다.
1986년 4월 26일 소련의 우크라이나에 위치한 체르노빌 발전소의 4호 원자로에서 안전 검사를 하느라 비상 설비가 꺼집니다. 그런데 여기서 갑자기 전력이 급상승하면서 우라늄이 녹는 것을 방지하는 제어봉이 노심에 들어갈 때 걸립니다. 그리고 악몽 같은 8톤의 방사성 물질이 대기로 뿜어져 나옵니다. 방사성 구름의 독성은 히로시마 원자폭탄 때의 400배이며 이 구름은 영국까지 뻗어 나갑니다.
체르노빌 이후 보이지 않는 살인자 핵 방사선에 대한 사람들의 공포와 불신은 커지기만 합니다. 그러나 원자력 지지자들은 적절히 관리한다면 안전하다고 합니다. 이런 목소리가 가장 큰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원자폭탄의 끔찍함을 아는 유일한 나라, 일본입니다. 이 섬나라에게는 원자력이 에너지 독립의 주요한 수단입니다. 2000년에는 일본 전력 생산량의 30%가 원전에서 나왔습니다. 이유는 원자력이 친환경 에너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2002년 3월, 일본 정부는 교토 의정서에 설정된 온실가스 배출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원자력을 이용하겠다고 발표합니다. 일본은 재난이 찾아온 2011년 3월까지 12곳의 새 발전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2011년 지진이 일어나고 그로 인해 쓰나미가 일어나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가 있는 일본 동부 지방이 물에 잠깁니다. 그 여파로 발전기가 고장 나고 냉각 시스템이 마비되어 또다시 노심 용융이 일어납니다.
후쿠시마를 정화하는 비용은 수천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넓은 지역이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었습니다. 이후, 일본은 엄격한 안전 검사를 통과할 때까지 모든 원자로의 가동을 중단합니다.
태양의 물리적 현상에서 힌트를 얻은 핵융합이라고 부르는 다른 종류의 핵 에너지가 있습니다. 핵융합은 핵분열로 핵을 쪼개지 않고 원자끼리 충돌해서 핵이 서로 융합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핵분열보다 3~4배나 많은 엄청난 에너지가 발생하며 처치 곤란한 유독한 잔여물도 남기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핵융합이 가능 하려면 태양의 엄청난 열과 중력이 필요합니다. 지구에서는 재현하기 어려운 환경인데 한 가지 방법은 독일의 '스텔라레이터'라는 프로토 타입처럼 자기장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기술 발전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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