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편의점에 생수가 다른 음료수 종류와 나란히 진열되어 있는 모습이 너무나 당연해 보이지만 예전에는 물을 병에 담아 판매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한때 미국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였던 플린트는 2014년 4월 낡고 관리가 허술한 배관 시스템 때문에 물에 납이 침출되기 시작했습니다. 정부의 늑장 대응 때문에 시민들은 수돗물을 믿을 수 없게 됐다고 생각하고 동이 트기 전인 새벽 다섯시부터 걱정 없이 마실 물을 얻기 위해 나와서 줄을 서고 있습니다. 오전 9시 정각에 물이 도착했습니다. 네슬레사에서 보낸 물품입니다. 네슬레사에서는 생수 6백만 병을 기부했습니다. 플린트 주민들의 건강을 위해서 엄청난 호의를 보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내는 다를지 모릅니다. 네슬레를 비판하는 수많은 이들은 사업 홍보의 기회를 교활하게 이용하는 것일 뿐이지 실질적인 도움을 위한 건 아니라고 합니다.
미국의 3억 인구는 매일 식수를 마실 수 있습니다. 마셔도 안전할뿐더러 사실 건강에도 좋습니다. 그렇지만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수돗물을 마시지 않습니다. 현재 미국인들은 매년 158리터의 생수를 마시며 생수 업계의 매출은 연간 350억 달러입니다. 이것은 무려 영화 산업의 3배입니다. 더구나 이 시장은 40년 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습니다.
이제는 커피보다 생수를 2배 이상, 맥주보다는 10배 이상 더 많이 구매합니다. 믿을 수 없을 만큼의 폭발적인 변화입니다. 실제로는 필요하지 않은데 자발적으로 제품을 사들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사람들은 매년 3,800억 리터의 생수를 마십니다. 미국은 그중 8분의 1을 소비하며 생수 소비 1위는 중국입니다.
어떤 이들은 생수를 집어 들면서 이런 생각을 할 겁니다. '이게 정말 필요한가?' 하지만 원론적으로는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이 물은 어디에서 왔을까?'
네슬레의 브랜드, 아이스 마운틴 생수의 수원지는 플린트 마을 북부로부터 160km 떨어진 곳입니다. 이곳에서 네슬레는 1분에 2,600리터 이상의 물을 퍼냅니다. 1분에 수천 병이 생산됩니다. 네슬레가 플린트에 기부한 모든 물은 이곳에서 이틀 동안 생산한 양에 불과합니다.
이 생수 시장은 매우 낡고 얄팍한 발상에서 수십억 달러 규모의 새로운 사업을 구축했습니다. 바로 지하수에 건강에 좋은 독특한 물질이 있다는 것입니다.
유럽에서처럼 미국 초기의 생수는 시골 온천과 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샘마다 건강에 좋은 특유의 미네랄이 수백 년 동안 지하를 흐르며 물에 녹아들었다고 알려졌으며 초기 생수들은 그 안에 든 미네랄로 이런저런 병들을 고칠 수 있다고 광고하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의학적으로 병의 원인을 밝히지 못할 때였습니다. 병의 원인은 물론 무지였습니다.
세계 도시들은 성장을 거듭하며 식수를 얻는 강에 폐수를 쏟아부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수인성 질병에 걸렸습니다. 공기나 접촉 때문이 아니라 오염된 물 때문에 병에 걸렸습니다. 의학이 발달하면서 공학, 화학, 생물학이 발전했고 인류는 정수하는 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구 역사상 공중 보건에서 가장 중요한 혁신은 위험한 물에 염소를 약간만 첨가하면 완전히 안전한 물로 바꿀 수 있다는 발견이었습니다.
1908년 뉴저지의 저지시티에서는 미국 최초로 도시 용수에 염소를 첨가했습니다. 다른 도시에서도 발 빠르게 그 뒤를 따랐습니다. 그러자 생수의 필요성이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차츰 생수 회사가 하나씩 문을 닫았습니다. 생수는 틈새 산업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미국 영화계의 거물이 모든 것을 바꾸었습니다. 오슨 웰스는 첫 페리에 광고를 만들었습니다.
'프랑스 남부의 평원 깊숙한 곳 수백만 년 전 시작된 신비로운 작용으로 자연이 만든 얼음장처럼 차가운 탄산수의 샘 페리어'
프랑스에서 백 년 이상 성장해온 페리에는 프랑스 시장보다 훨씬 큰 거대한 미국 시장에 진출하고자 했습니다. 끈질긴 광고를 통해 페리에는 자신들의 샘물을 건강한 것처럼 묘사했습니다. 새로운 건강 세대에 딱 맞는 음료로 선전했습니다. 그 결과 1976년 페리에는 미국에서 물 300만 병을 팔았으며 1979년에는 2억 병을 팔았습니다. 페리에는 미국 샘물의 유명 브랜드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페리에는 네슬레에 인수되었습니다.
샘물의 패권은 악마의 거래였습니다. 네슬레는 샘물 브랜드를 만들 수원이 필요했습니다.
고급 샘물 판매를 위해 생수 업계는 새로운 수원을 찾아야 했지만 자연적으로 흐르는 샘은 일반적으로 물의 양이 많지 않습니다. 이에 네슬레를 비롯한 생수 업체들은 기발한 해결책을 찾았습니다. 미국의 도시 용수는 환경 보호국의 규제를 받지만 생수는 식품 의약품 안전청에서 연방 정부 수준의 통제를 받습니다. 생수 업체들은 식품 의약품 안전청을 로비해서 샘물에 대한 유용한 정의를 성문화하도록 했습니다. 1996년 네슬레를 비롯한 생수 회사들은 직접 샘에서 얻지 않은 물도 샘물로 팔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하 대수층에 직접 구멍을 내 어딘가에 있는 샘물과 연결만 할 수 있다면 말입니다. 그러나 지하수의 문제는 자연적으로 다시 차오르는 양보다 더 많이 퍼 올리게 되면 수위가 낮아진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지하수가 말라가면서 생태계 파괴가 뻔히 보이게 됩니다.
샘물 사업과 건강과 웰빙에 대한 19세기 신화가 생수 열풍을 불렀습니다. 그러자 1990년대 펩시와 코카콜라 등의 음료 회사들은 양수의 번거로움 없이 물에서 이익을 얻는 방법을 고안했습니다. 일명 정제수(Purified Water)입니다. 처음에는 펩시 그다음은 코카콜라가 전국에 음료 공장을 세웠으며 엄청나게 많은 물을 썼습니다. 이들은 굳이 샘물이 아니어도 물에 상표를 붙여 팔면 팔린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아쿠아피나'는 펩시 브랜드이며 '다사니'는 코카콜라 브랜드입니다. 그 둘이 전 미국에서 팔리는 생수 중 20% 이상을 차지합니다. 아쿠아피나와 다사니는 그냥 수돗물입니다. 코카콜라와 펩시가 한 일은 마셔도 되는 깨끗한 식수를 가져다가 역삼투 시킨 것이 다입니다. 물 안의 모든 것을 제거하고 거기에 약간의 비법으로 미네랄을 소량 첨가합니다. 왜냐하면 완전히 순수한 물, 증류수는 엄청나게 맛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물이 부족한 전 세계 3분의 1 지역은 어마어마한 돈벌이 대상입니다. 정제수의 성공으로 대부분의 생수는 개발도상국에서 팔립니다. 안전한 물에 접근할 수 없거나 기본적인 물 수요를 정부가 충족시키지 못할 때 생수 산업이 끼어들었습니다. 그래서 생수를 사지도 못할 만큼 가난한 국가의 가난한 마을에서도 사방에 생수병이 보이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상품화된 생수 업계는 물이 절실한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습니다.
나이지리아는 아프리카 내에서 좋은 수자원을 가진 편입니다. 지표수가 많고 대수층의 양도 상당합니다. 하지만 나이지리아는 극심한 물 부족 위기에 시달립니다. 라고스는 아프리카 최대 도시로 총 인구는 2,100만 명으로 추산됩니다. 그러나 1,900만 명은 공공 용수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나이지리아에서는 질 좋은 고급 생수가 연간 60억 달러 이상 판매됩니다. 라고스의 식수 부족은 재난 수준입니다. 있어야 할 곳에 물이 없고 물이 있더라도 마시기에 깨끗하거나 안전하지 않습니다.
1990년대까지 공공 수도 설비로 도시 곳곳에 물을 공급했지만 라고스의 인구 폭발로 수도 체계가 방치됐습니다.
아프리카의 물 시장은 명백한 사업 기회가 되었으며 또한 이중 시장이 생성되었습니다. 부자들은 안전한 물을 사고, 없는 사람들은 오염수를 마시고 병에 걸리는 시장입니다. 생수 업계가 돈을 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정부가 안전한 물과 위생에 대한 기본적 요구를 채우지 못해서입니다. 생수를 살 돈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수많은 사람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이곳의 고급 생수 판매량은 지난 10년 동안 매년 7%씩 증가했습니다. 시장 꼭대기에 앉아 있는 기업은 코카콜라, 펩시, 네슬레입니다. 평균적인 나이지리아인에게 이런 물 한 병 값은 반나절 급료에 해당합니다. 생수의 소비자는 부자들이나 빠르게 확산하고 있는 중산층이며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믿을 수 있는 생수를 사들입니다.
2005년 네슬레는 라고스 근처에 첫 나이지리아 공장을 세웠습니다. '다사니'와 '아쿠아피나'와 같이 역삼투압을 사용하는 정제수 생산 공장입니다. 네슬레는 미국의 샘물 시장을 지배해왔지만 네슬레에는 정제수 브랜드도 있습니다. '퓨어 라이프'라고 하는데 이는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한 것입니다. 퓨어 라이프는 세계에서 가장 잘 팔리는 생수 브랜드로 덕분에 전 세계 생수 시장의 10%를 네슬레가 차지했습니다. 성공적인 나이지리아 진출 덕에 2016년 네슬레는 수도 아부자로 향하는 도로가에 제 2 공장을 설립했습니다. 이들이 택한 부지는 만데레기라는 빈곤한 마을이었습니다.
이곳은 마을 이장이 태어날 때까지 수렵으로 생계를 이어온 곳입니다. 이 시골 마을에서는 여성과 아이들이 늘 그랬듯이 마을 동쪽 경계를 따라 흐르는 강가에서 물을 길었습니다. 그러다 네슬레가 왔습니다. 네슬레는 자신들이 필요한 물을 얻으면 마을 사람들에게도 안전한 식수를 무료로 주겠다고 했으며 학교도 수리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약속을 지키지 않고 공장 옆에 수도를 만들어 놓고서는 마을 사람들에게 물을 줬다고 말합니다.
마을과 공장은 강보다 4배나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공장의 수도까지 가려면 매일 4배나 더 걸어야 합니다. 그래서 마을의 여성과 아이들은 공장의 수도를 이용하지 않고 위험한 고속도로를 건너 다니며 강가에서 물을 길어옵니다.
그리고 퓨어 라이프 공장 둘레를 따라서있는 벽 사이로 배수관이 뚫려 있습니다. 공장에서 나온 폐수를 지역 강으로 배출하는데 그 물에 무엇이 있는지 주민들은 알지 못합니다. 이것은 마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고 설치되었으며 마을 사람들이 강에서 솟구치는 물을 발견하고 찾다가 이 공장의 배수관을 발견한 것입니다. 공장 사람들에게 말하니 그 물을 마시지 말라고 합니다.
그리고 2019년 5월 만데레기 촬영을 끝내고 6개월 뒤 네슬레 워터스는 다큐멘터리 제작사에게 연락해서 입장을 밝혔습니다. 조사 결과 몇 가지 개선 사항이 발견되었는데 독립적인 연구소에 배수관의 물질을 분석한 결과 규제 범위에 부합한다는 내용이며 네슬레는 새로이 태양 전지를 설치하고 회사에서 설치한 펌프를 수리해서 마을 중심부로 지하수를 조달했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새로운 구멍을 파겠다고 말했으며 이는 고속도로 서쪽 마을을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생수 대 수돗물의 대결은 제3세계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100년 전 안전한 수돗물을 완성한 미국에서 벌어진 플린트의 수질 위기 때문에 대중의 불안이 널리 번졌습니다. 최근 한 여론 조사에서 미국인들은 수질이 헤로인 남용 만큼이나 심각한 공중 보건 문제임을 밝혔습니다.
수돗물이 정수장을 떠나 지하 수도관을 통해 시민들에게 흘러 들어갈 때 그 가격은 3.5리터 당 1센트도 안됩니다. 만약 편의점 냉장고에서 '폴란드 스프링' 생수를 1.09달러에 산다면 수돗물은 그 병을 매일 집에서 8년간 채울 수 있습니다. 이렇게 수돗물과 생수는 3천 배나 차이가 납니다. 그렇지만 미국인들은 기쁜 마음으로 생수에 돈을 냅니다. 공공 용수에 대한 신뢰가 날로 옅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중의 두려움에도 이유는 있습니다. 플린트 사건의 경우는 가장 유명한 경우일 뿐이며 뉴저지 뉴어크 관계자들은 2018년 10월에 4만 가정에 납이 든 물이 공급됐을지도 모른다고 시인했습니다.
한 조사에 따르면 필라델피아 시민 43퍼센트가 집에서 생수를 마신다고 합니다. 저소득층 가구로 조사 대상을 한정하면 그 수치는 59퍼센트로 훌쩍 뜁니다. 훌륭한 공공 용수를 공급받는 우리 도시의 많은 이들이 생수를 사서 마십니다. 저소득층이 생수를 더 많이 마신다는 사실은 절망스럽습니다. 지역 공동체가 시에 신뢰를 잃었으며 그들에게 마땅히 필요한 서비스를 시가 해주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수돗물을 신뢰하는 납세자가 줄어든다면 물에 드는 세금을 아까워하게 되며 이 거대 사회 기반 시설을 최신 상태로 유지하는 것도 점점 힘들어질 겁니다. 그 때문에 수도 설비에 대한 투자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생수 업계는 그 반대 방향으로 시장을 더 강력하게 밀어붙입니다. 폴란드 스프링은 '오리진'이라는 새 프리미엄 브랜드를 내놨습니다. 같은 물을 다른 병에 담아 더 비싸게 파는 겁니다. 세포의 소통을 향상시켜준다는 물도 있으며 이것은 1병에 40달러에 판매하며 북극에 나온다는 한정판 빙하수도 1병에 59달러에 판매합니다.
많은 생수 회사가 파는 물은 그저 수돗물에 불과하지만 공공 용수에 대한 신뢰가 낮아지고 생수 업계의 광고로 인해 생수를 신봉하는 자세는 앞으로 우리가 10년 후 50년 후 직면하게 될 문제 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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