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지구촌에서는 1년 열두 달 내내 아보카도를 먹을 수 있습니다. 기름지고 부드러운 맛을 갖고 있는 아보카도는 이제는 건강식품 일명 슈퍼푸드로 여겨지며 매일 먹어야 하는 음식으로 추앙받습니다. 약 50억 Kg의 아보카도가 매년 소비됩니다.
원산지인 멕시코는 매년 25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입니다. 멕시코 농부 입장에서는 처음에는 아보카도를 1Kg에 2페소 ~ 2.5 페소에 팔았었는데 이제는 1Kg에 80페소까지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멕시코 농부에게는 축복이자 저주입니다.
칠레에서는 아보카도가 잘 자라지만 안 그래도 부족한 물을 전부 다 쏟아부어야 합니다. 칠레 페토르카 지역의 한 마을은 마을의 샘과 수로가 다 메말라 버려서 트럭으로 물을 공급 받아 그 물로 씻고 목을 축이고 음식을 해 먹게 되었습니다. 아보카도 하나를 생산하는데 필요한 물의 양은 최소한 68리터입니다.
어쩌다가 아보카도가 이렇게 큰 힘을 갖게 되었을까요?
노엘 스틸리는 캘리포니아 밸리 센터의 2세대 농부입니다. 그의 농장 덕에 아보카도가 지역에서 즐기던 특산품에서 전 세계적인 열풍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1962년쯤에 이곳을 사들여서 1964년도에는 애너하임에서 캘리포니아로 농장을 옮겼습니다. 아보카도는 아주 예민해서 날씨가 좋아야 합니다. 기온은 22도 정도에 습해야 합니다. 영하 1도 이하로 떨어지게 되면 아보카도를 그 상태로 4시간만 두어도 손상을 입습니다. 그리고 아보카도 농장은 보통 산간 지대에 있습니다. 찬 공기가 계곡 바닥에 가라앉기 때문 산비탈에 아보카도를 심습니다. 미국산 아보카도의 95퍼센트가 캘리포니아에서 자랍니다.
아보카도 산업은 20세기에 걸쳐 느리지만 꾸준히 성장했습니다. 건강식품에 대한 인식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푸에르테 아보카도는 영양소가 풍부하고 의사들이 좋아하는 여러 가지 성분이 많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생산자들은 아보카도를 사치품으로 홍보했습니다. 세련된 홈 세프에게 어울리는 이국적인 서해안의 식재료라는 광고는 소비자들에게 먹혔습니다.
아보카도가 흔하게 식탁에 오르게 되자 새로운 문제가 터졌습니다. 지방을 태우고 땀 흘리기를 권장했던 1980년대에 아보카도는 지나치게 기름지고 부드러웠던 것입니다. 다행히 갓 발족한 캘리포니아 아보카도 협회는 아보카도의 대중적인 이미지 쇄신에 전 생산 수익의 1퍼센트를 투자했으며 그 계획은 성공적이었습니다. 아보카도 생산자들과 협회에서는 돈을 주고 '아보카도는 건강하다'라는 연구 결과를 사들였습니다.
아보카도 산업은 성장을 거듭했으며 1970~85년 캘리포니아의 아보카도 농장수는 4배 가까이 급증했습니다. 농작물 가치는 2,500만 달러에서 1억 6,200만 달러로 급증했습니다. 1998년 아보카도 농장은 훌륭한 투자처로 인식됐습니다. 이 놀라운 성장은 미 정부 보호하에 일어났습니다. 가장 강력한 경쟁자인 멕시코로부터 캘리포니아를 지켜주었습니다.
멕시코는 아보카도 원산지이며 미국은 멕시코산 아보카도 수입을 수십 년간 원천 봉쇄했습니다. 그러나 NAFTA 이후 얘기가 달라졌습니다. 1993년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는 북미 자유 무역 협정을 체결해 무역 국경을 열었습니다. 처음에는 농민들이 매우 격렬하게 반발했습니다만 결국 2007년에 이르자 멕시코는 미국 전역에 아보카도를 수출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쏟아져 온 멕시코산 아보카도는 미국산 아보카도를 파묻는 대신 시장을 부양 시켰습니다. 그 이유는 아보카도는 계절 과일이어서 캘리포니아에서는 1년 내내 공급할 수 없었는데 멕시코산이 들어오면서 그 틈이 메워졌고 1년 내내 즐길 수 있는 과일이 되었습니다. 그 후 수요는 더욱 급증했지만 공급이 워낙 많아 가격은 점차 낮아졌습니다. 미국의 아보카도 소비는 10년 만에 2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올해 미국에서는 약 10억~11억 Kg의 아보카도가 소비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올해 캘리포니아의 생산량은 약 1억 3천 Kg을 겨우 넘은 터라 미국 전역의 소비량에 비하면 어림없이 부족합니다.
멕시코의 미초아칸 지역은 NAFTA가 발효되었을 때 미국의 위생 요건을 충족하는 멕시코의 유일한 주였습니다. 세계적으로 소비되는 아보카도의 3분의 1이 이곳에서 생산됩니다.
탄시타로는 미초아칸의 아보카도 산업 중심지이면서 무장 캠프이기도 합니다. 멕시코산 아보카도에 나프타가 열어준 문은 멕시코 내 조직범죄에 독특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마약 거래로 득세한 오랜 범죄 카르텔이 무너진 것입니다.
1990년대 미초아칸 최대의 갱은 '걸프 카르텔'이었습니다. 걸프 카르텔은 마약 밀매로 돈을 벌었습니다. 법 집행 기관과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고 사업을 보호했습니다. 미초아칸에는 농업과 마약 밀매가 나란히 번성했습니다. 당시 마약 밀수업자들은 민간인들을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그 후 '로스 세타스'와 그 조직 문화가 들어오면서 크게 바뀌기 시작해서 지역민들을 직접 노리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로스 세타스는 범죄 조직이 아니라 마약상에게 고용되었던 군 출신 특공대 정예부대였습니다. 걸프 카르텔은 엘리트 군인을 모집한 선두 주자였습니다.
1990년대 후반 로스 세타스는 독자적인 카르텔을 결성하기로 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사업을 시험했는데 그것은 강탈과 납치였습니다. 이들은 마약 생산과 수출을 통한 이윤 만을 기대하는 대신 여러 가지로 최대한 많은 돈을 짜내려고 했습니다. 지역 자원도 수탈했으며 미초아칸의 경우는 아보카도 산업이 표적이었습니다.
NAFTA 이후 농업 단체가 매년 수억 달러를 벌었습니다. 이 지역에 새 돈줄이 생겼고 갱들은 멕시코 농림부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고 큰 성공을 거둔 농부들의 이름과 주소를 빼돌렸습니다. 그리고 농부들을 납치하여 몸값을 받아 냅니다.
2006년 펠리페 칼데론 대통령은 카르텔과의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고향 미초아칸에 군 병력을 투입했습니다. 2만의 병력이 미초아칸에 투입돼 카르텔 두목들을 체포하고 암살했습니다. 그러나 효과는 없었습니다. 카르텔은 작은 범죄 조직으로 분화했으며 마약으로 창출하는 수입이 줄어들자 로스 세타스같은 갱은 더욱 가혹하게 착취했습니다. 그들은 파트너들을 죽이기 시작했고 이에 반발한 파트너들은 자신만의 새로운 조직을 결성했습니다. 그 조직은 '라 파밀리아 미초아카나'입니다. 이들은 로스 세타스에 대한 반발로 탄생했으며 미초아칸내 여러 지역에서 이들이 득세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들은 더욱 잔혹하게 지역민들을 되는 대로 쥐어짜기 시작했습니다. 2010년 라 파밀리아 미초아카나는 다시 한번 쪼개집니다. 새로운 분화 조직은 '나이츠 템플러'입니다. 이들의 가장 중요한 수입원 중 하나가 아보카도 산업에서 갈취하는 돈입니다. 이들은 농부들에게 돈을 뺏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시장을 통제하고 싶어 했습니다. 농장마다 할당량을 정해주고 할당량을 강제하기 위해 창고와 트럭을 불태우기도 했습니다. 당시 생산량이 워낙 많았기에 가격 하락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2011년에 이르자 농부와 가족들을 납치하고 몸값을 받기도 합니다.
모두들 갱들에게 진저리가 나자 용감하게 황소의 뿔을 잡기로 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때 아우토 디펜사스라는 자경단이 탄생하게 되었으며 온 마을 사람들이 아우토 디펜사스와 뜻을 함께 했습니다. 자칭 선인들이 과수원을 지켰지만 초기에 누가 누구였는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최초의 아우토 디펜사스로서 탄시타로에 들어와 나이츠 템플러를 몰아낸 이들 중에는 범죄 조직원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진정한 자경단으로서 싸구려 무기를 들고 맞서 싸운 가난한 민간인들이 생겨났습니다. 탄시타로는 요새와 같으며 아보카도에서 난 수익으로 외부의 위협을 물리칩니다. 아보카도의 수익이 사회와 경제, 정치적 생활을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이제 아우토 디센사스는 겉으로 보기에는 농민 단체 같지만 실제 이 지역에서 권력을 쥔 건 이들이며 이들이 지역 정부를 통제합니다. 미초아칸은 미 국무부에서 방문 금지 지역으로 지정 당했습니다.
아보카도의 다음 화두는 물입니다.
칠레 페토르카 지역은 칠레에서 아보카도가 가장 많이 생산되는 지역이지만 극심한 물 부족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곳 주민은 예전에 배, 호두, 살구, 자두, 복숭아 등 여러 가지 나무들이 많았었던 때를 회상하며 이제는 더 이상 흐르지 않고 말라버린 강바닥을 바라봅니다.
칠레의 물 이용 개념은 세계 여느 곳과 다른데 이것은 미국에서 수출된 것입니다. 1970년대 칠레의 경제학자 몇몇이 자유 시장 전문가 밀턴 프리드먼과 시카고 대학교에서 교류를 했습니다. 그들은 그 발상을 고향으로 가져와 법으로 제정하기로 합니다. 당시 칠레 대통령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였고 그가 인가를 내리자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981년 물이 민영화되었습니다.
그 경제성 모형 때문에 많은 천연 자원이 민영화되었습니다. 효율성을 추구하려는 목적이었지만 국가의 규제와 감독의 메커니즘은 없었습니다.
아보카도의 원산지가 칠레는 아니지만 지리적 고립 덕분에 칠레에서 생산된 과일에는 질병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미국 규제 당국은 칠레산 아보카도의 제한적 수입을 허용했습니다. NAFTA로 멕시코산 아보카도가 쏟아지기 10년 전이었습니다.
1990년대 중반 칠레는 아보카도 대미 수출량을 늘렸습니다. 그러자 물 사용권 요청 및 승인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그 물과 미국 시장 초기 진출 덕분에 칠레산 아보카도 생산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페토르카에는 2개의 강이 있습니다. 페토르카 강이 있고 계곡 반대편에는 리과강이 있습니다. 페토르카 강이 메마르자 1997년 이용이 제한됐습니다. 리과강이 메마르고 접근이 제한된 것은 2004년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계곡 아래의 몇몇 소규모 농부들은 농장문을 닫았습니다. 이들은 강에서 농장에 물을 댈 관개권이 있지만 강이 말라서 의미가 없었으며 14미터 깊이의 우물을 팠지만 그마저도 오래 버틸 수 없었습니다. 영세농민들은 물값을 댈 여력이 없어 상품을 생산하지 못합니다. 대규모 생산업자들에게 땅을 팔아 버리는 게 더 쉬운 상황입니다.
"물에 대한 인권을 침해한 자들이 기른 아보카도를 북미와 유럽에서 사들이다니요. 그게 그들의 본모습이죠. 비난 받아 마땅해요. 물에 대한 인권을 침해를 부추기는 행위니까요. 우리 땅에서 물을 훔친 자들에게서 아보카도를 사들이는 것은 칠레 내 물 인권 침해를 부추기는 행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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