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는 것보다 더 많은 수의 노예가 죽은 나라입니다.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수입해 오는 것이 더 쌌습니다. 모든 반란은 잔혹하게 분쇄되었고 군벌들에 의해 공화국으로 선포되었습니다. 21년간의 독재 끝에 민주 정부를 세웠으며 세계에 많은 귀감이 되었습니다. 브라질은 마침내 저주를 깨뜨린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대통령 한 명은 탄핵 되었고 다른 한 명은 투옥되었으며 나라는 빠르게 과거 독재 정권 시절로 회귀하고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민주주의는 짧게 끝난 꿈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두렵습니다.
독재 정권 하에서 민주주의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대규모 파업으로 독재 정권이 타격을 입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파업을 이끈 것은 금속노동자이자 노조 지도자인 33살의 루이스 이시나우 룰라 다 시우바입니다. 룰라는 처음으로 의회를 방문하여 443명의 의원 중 단 두 명만이 노동 계급 출신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에야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정치적 행동을 하게 된 노동자들이 민주주의로 가는 길을 열었습니다. 1980년에 노동자당 창당을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89년에 대선에 나서지만 패배합니다. 1994년에도 졌고, 98년에도 졌습니다. 이것은 강성 노동자라는 이미지 때문이므로 2002년에는 사업가들에게 우호적인 모습으로 타협하기로 합니다.
감독은 룰라가 당선되었을 때의 흥분을 기억합니다. 이 나라의 지독한 불평등이 마침내 시정될 것이라는 희망과 룰라를 끌어내리려는 자들의 공포와 불신을 기억합니다.
룰라는 61%의 지지율로 당선됐지만 여전히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의 연정은 과반을 넘지 못하고 그의 정당은 곧 부패 스캔들에 휩싸입니다. 다수를 확보하기 위해 의원들을 매수했다는 것이죠.
그의 후계자들 역시 추락합니다. 룰라는 스캔들과 거리를 두는데 성공했지만 이후 룰라가 의지한 것은 의회에서 가장 강력한 정당과의 연정입니다. 그 정당은 브라질민주운동당입니다.
"왜 부자들을 돕는 것은 투자라고 하고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은 비용이라고 하는가"라고 이야기하는 룰라 정부가 만든 '보우사 파밀리아' 정책은 브라질의 극빈층 가족의 아이들에게 학교를 다니게하고 매달 30달러를 제공했습니다. 이 정책으로 2천만 명의 사람이 가난에서 벗어났으며 대학에 다니는 아프리카계 국민의 숫자가 세 배로 뛰었고 실업률은 역사상 최저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세계 경제가 붕괴된 가운데에서도 브라질은 세계 13위에서 7위의 경제 대국으로 뛰어올랐습니다.
그리고 2010년 룰라가 지목한 노동자당의 지우마가 대통령으로 당선됩니다.
2011년 1월에 두 번의 임기를 마친 룰라가 퇴임했으며 룰라가 퇴임할 때 지지율은 87%에 달했습니다.
지우마가 처음 대선에 나섰을 때 의지한 것은 룰라가 아닌 브라질민주운동당과의 연정이었습니다. 브라질민주운동당의 조건은 보수 정치가인 당 대표 테메르를 부통령으로 삼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남자는 5년 후 지우마가 없는 세상을 바랍니다.
2013년 6월 '아랍의 봄' 물결을 타고 버스 요금 인상에 대한 작은 시위로 시작했다가 경찰들의 폭력 행위가 언론과 소셜 미디어로 알려지면서 역사상 가장 큰 시위로 발전하게 됩니다. 20년 만에 거리가 복합적인 요구 사항으로 깨어나게 되면서 사회 구조의 어떤 부분이 바뀌기 시작했고 사람들을 갈라 놓는 큰 분열을 일으켰습니다.
이 시위가 벌어지기 직전까지는 지우마의 인기는 최정점에 달했습니다. 지우마는 룰라도 하지 못했던 급진적인 행보를 보였습니다. 지우마는 브라질민주운동당 인사를 정부 요직에서 해임했고 이자율을 낮춰서 은행가들에게 도전했습니다. 그러나 시위로 인해 지우마의 지지율은 27%나 하락합니다. 정부에 대한 신뢰를 되찾기 위해 지우마는 빠르게 반부패 법안을 발표합니다. 거기에는 대형 수사를 가능하게 한 자백 감형 제도 개선안도 있습니다.
곧이어 정치 시스템을 뒤흔들 쓰나미가 다가옵니다. '세차 작전'이란 이름의 수사를 통해 미 국가안보국의 감시 대상이었던 국영 거대 석유 기업 페트로브라스가 조사를 받습니다. 곧 수사관들은 부패의 그물망을 밝혀냅니다.
조사를 지휘한 사람은 브라질 남부 출신의 연방 검사입니다. 미국에서 공부했던 세르지우 모루는 언론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는 법을 압니다. 주요 언론들은 그의 이야기를 의심 없이 받아씁니다. 모루는 용의자들이 더 중요한 인물을 고발할 때까지 재판 없이 구금하기 때문에 '세차 작전'은 곧 브라질의 실화 범죄 스릴러가 됩니다.
사실 이러한 건은 룰라 때부터가 아닌 아주 오래전부터의 관행이었고 그래서 아무도 비자금을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또한 비자금을 받지 않았다는 정치인은 아무도 없는 사안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업가들이 이야기를 시작하자 노동자당을 비롯한 여러 당의 정치가들이 체포되기 시작했습니다.
새 선거를 앞두고 많은 사람들이 수사에 개입하지 않는 지우마 대통령을 탓했습니다. 결국 이 수사는 지우마 대통령을 나락으로 빠뜨리게 됩니다.
아에시우 네베스는 2014년 대선에서 대통령 지우마와 맞대결을 한 대선 후보입니다.
결과는 지우마 대통령이 근소한 차이로 이깁니다. 아에시우의 정당이 대선에서 노동자당에게 네 번째로 패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에시우 네베스는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않았습니다. 재검표를 요구했지만 결과가 바뀌지 않자 그는 지우마 대통령을 탄핵하려는 로비를 시작합니다.
우익 단체들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대중들의 반부패 정서를 건드려서 지우마와 룰라 그리고 노동자당에 반대하는 폭동을 일으킵니다. 언론도 시위를 세세하게 방송하면서 그들의 공격적인 행태를 정상으로 보이게 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국제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면서 브라질은 불황을 맞습니다. 지우마는 선거 당시의 약속을 깨고 긴축 정책을 펼칩니다. 실업률은 8%로 오르고 400만 명 이상의 브라질 국민이 빈곤 상태에 빠집니다. 지우마 대통령의 지지율은 9퍼센트까지 떨어집니다.
2015년 12월 의회가 지우마에 대한 탄핵 요구를 받아들인 것은 이런 분위기에서였습니다.
'세차 작전'이 절정에 달했을 무렵 연방 검사 모루는 경찰에게 룰라를 구금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유는 '세차 작전' 스캔들에 연루된 건설사로부터 룰라가 아파트를 제공받았다는 혐의였습니다. 공식적인 기소는 없었지만 이런 장면은 유죄라는 인상을 만들어냅니다. 경찰은 룰라의 사무실과 룰라 아들의 집을 급습했습니다..
'세차 작전' 24회차 수사에서 현 대통령 지우마와 전 대통령 룰라와 나눈 비밀 대화 내용이 공개됐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 이 유출된 음성은 지우마가 룰라에게 각료 임명장을 통해 행정부 각료의 불체포권을 주려고 한 증거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겐 모루 판사가 법을 이용하여 룰라를 정치판에서 축출하려고 했다는 증거였습니다. 이 시점에서 브라질은 양립이 불가능한 두 편으로 갈라졌습니다.
지우마의 변호인이 주장합니다. 신대륙 발견 이후부터 구조적이고 조직적인 부패로 얼룩졌던 역사를 지닌 나라에서 이건 터무니없는 일입니다. 합법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을 1센트라도 훔쳤다는 기소 절차도 없이 법원이 인정한 회계 문제를 빌미 삼아 쫓아낸다니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탄핵 절차는 탄핵이라 불러서는 안됩니다. 이것이 이루어진다면 쿠데타라고 불러야 합니다.
그리고 감독의 나레이션이 나옵니다. "이때 저를 포함한 절반의 브라질인들은 지우마가 부패 협의로 탄핵 당하는 줄 알았습니다."
상대편에게 경멸의 손짓을 하고 있는 이 사람은 자이르 메시아스 보우소나루입니다. 퇴역한 육군 대위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들은 독재 정권 시절 고문과 암살로 악명이 높았던 사람을 칭송합니다. 농장주에게 라이플총을 주겠다는 극단적인 발언을 하는데 감독은 그것이 바로 군부 통치 하에서 저지른 범죄는 절대 처벌하지 않은 나라의 단면이라고 말합니다.
하원 표결 이후 상원은 최종 판결이 나올 때까지 112일간 지우마의 대통령 직무를 정지시켰습니다. 그리고 부통령이었던 테메르(브라질민주운동당)는 임시 대통령으로서 새로운 내각을 구성했습니다.
노동자당은 권력을 얻게 되면서 쉽게 거물들과 친구가 될 줄 알았다고 생각했으며 기업에서 선거 자금을 받는 등 다른 당과 똑같은 행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것에 대해 사법부가 노동자당을 다른 정당과는 완전히 다르게 취급하리라는 점을 완전히 잊고서 말입니다.
테메르의 임시 행정부가 들어선 지 11일 밖에 되지 않았을 때 모 정당이 유출한 새로운 녹음 파일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려주며 테메르 정부에 폭탄이 터졌습니다. 그 대화는 첫 번째 탄핵 표결 몇 주 전에 녹음된 것으로 부통령 테메르의 오른팔인 호메르 주카 상원 의원이 석유 회사 전 임원과 '세차 작전'에 대해 논의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대화에 등장하는 두 사람은 자기들에 대한 부패 조사를 중지 시키려면 지우마 대통령을 쫓아낼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탄핵의 동기가 드러났으므로 탄핵 절차가 무산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상원에서 탄핵이 되고 모든 이목이 다음 대통령 선거로 쏠립니다. 이에 룰라는 대통령 선거에 다시 나서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러나 검찰청은 범죄 조직의 최고위층에 접근하기 위해서라며 룰라를 '세차 작전'으로 드러난 부패 계획의 주모자로 고발했습니다. 탄핵 이후 단 2주가 지난 후에 검찰은 파워포인트로 혐의를 제기하고 TV로 생중계를 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기소는 2년간의 수사를 통해 룰라가 건설사로부터 아파트를 받은 혐의를 잡으면서 이루어집니다.
검사가 주장합니다. "아파트의 법적인 소유자가 룰라임을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이 아파트의 소유자가 룰라라고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은 진짜 소유관계를 숨겨 놓았다는 것입니다."
룰라가 그 아파트의 소유자라는 증거가 없다는 사실이 룰라가 아파트를 숨기려 했다는 증거로 간주됩니다.
룰라의 아내 마리자도 아파트 건으로 피소를 당했습니다. 넉 달 후, 마리자는 뇌졸증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재판에서 룰라가 이야기합니다.
"저는 이 재판이 불법이고 기소 자체가 웃음거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법률과 헌법을 존중해서 이 자리에 나오긴 했으나 '세차 작전' 검사들에 대해서는 많은 의구심이 있습니다. 저는 거짓에 근거한 파워포인트 한 장 때문에 재판받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심리에서는 검찰청이 좀 제대로 올바르게 행동할 줄 알았습니다. 예를 들자면 '룰라는 자기 소유가 아니라고 하지만 돈을 지불했다는 법적 서류가 있으니까 이것은 사실이야' 이런 것들. 제가 원하는 것은 이 자리에서 빈정거림은 그만두고 제가 저지른 범죄가 무엇인지 알려 달라는 것입니다."
두 달 후 모루 판사는 룰라에게 9년 6개월 형을 선고합니다. 룰라의 사건은 '세차 작전'의 다른 어떤 절차보다 빠른 속도로 상소 법원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의 형량은 12년으로 늘어납니다.
룰라의 변호사 기자회견 : 룰라에 대한 기소 건은 영국이나 유럽이라면 시작도 못했을 것입니다. 브라질 사법 시스템이 특이한 것은 검사가 판결까지 한다는 것입니다. 모루 판사와 같은 수사 판사는 용의자를 지목해 도청을 지시할 수도 있고 가택을 수색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다음 용의자를 기소해서 공판 판사에게 넘기죠. 피고인의 가장 중요한 권리는 공정한 판사에게 재판받는 겁니다.
대선 불복과 우익 단체들의 폭동을 일으킨 아에시우 또한 뇌물 관련 녹취가 드러나지만 면책 특권과 동료 상원 의원들의 도움으로 자신의 권한과 자유를 지킵니다. 지우마의 탄핵 표결 때는 부패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그처럼 드높이던 하원 의원들이 테메르의 수사 여부에 대한 표결에서는 갑작스럽게 어조를 바꿉니다. 투표 결과는 테메르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허가하지 않기로 합니다. 이 표결은 40억 헤알짜리로서 하원 의원들이 대통령의 기소를 막아 주었습니다. 80%의 국민들은 테메르가 수사를 받기를 원했지만 정치가들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주식 시장은 그 결정을 크게 환영했습니다. 테메르는 그들이 요구하는 바를 거의 다 들어줄 것이니까요.
대선 6개월 전 룰라는 투표 의향 층에서 31%의 지지를 얻어 선두였습니다. 보우소나루는 15%로 그 뒤를 따랐습니다. 여론 지형에서는 보우소나루가 조금씩 구세주로서 모루가 잠식했던 부분을 차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반민주적인 발언에도 불구하고 엘리트 계층의 상당수가 그를 시장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한 최선의 대안으로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연방최고법원은 룰라의 상소를 기각합니다. 그 다음날 모루 판사는 룰라에게 24시간 내에 자진해서 감옥에 출두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룰라 인터뷰 : "저도 압니다. 저를 잡아 넣어야 쿠데타가 끝나겠죠. 지우마의 탄핵으로 저한테 오게 된 거니까요. 지우마를 탄핵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죠."
그리고 6개월 후 대선에서 보우소나루가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세르지우 모루 판사는 보우소나루 정권의 법무 장관이다.
룰라는 아직 감옥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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