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잡은 2011년 개봉한 다큐멘터리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한 번쯤 보면 좋을 다큐라 생각합니다.
2008년 세계경제 위기로 수천만명이 저축, 직장 그리고 집을 잃었습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그 사건의 전모를 밝힙니다.
아이슬란드, 인구 32만 명, 국민총생산 130억 달러, 은행 손실 1,000억 달러
안정된 민주주의 국가 아이슬란드는 생활수준이 높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실업률과 국가부채도 낮았습니다. 현대적 사회 인프라도 완벽하게 갖췄고 청정에너지 사용 식량 생산량도 높고 어업 할당제로 포획을 제한합니다. 의료시설, 교육제도 우수하고 공기도 맑고 범죄율도 낮습니다. 가족들이 살기 좋은 곳입니다. 그런데 2000년 정부가 경제규제 완화를 시작하면서 엄청난 재난을 초래합니다. 환경은 파괴되고 국가 경제는 망가졌습니다. 또 정부는 대형 은행 세 곳을 민영화하면서 그 결과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금융 규제 완화 조치를 단행합니다. 그리고 소규모 은행 세 곳이 그 이후 5년간 1,200억 달러를 대출했는데 이는 아이슬란드 경제규모의 10배에 해당합니다. 엄청난 경제 거품이 생기면서 은행들은 나눠먹기식으로 부당이익을 취합니다. 주가는 폭등하고 집값은 두 배로 뛰었습니다. 이런 거품으로 존 요하네슨 같은 사람이 나타나서 은행에서 수십억 달러를 빌려 런던에서 명품 장사를 하고 전용기를 구입하고 4천만 달러짜리 요트에 2천5백만 달러로 맨해튼 펜트하우스도 구입합니다. 이 백만장자가 회사를 인수했다는 기사가 늘 나왔고 영국, 핀란드, 프랑스에서도 사업체를 사들였는데 그때 기사에 안 나온 건 그게 다 은행 돈이었다는 사실입니다. KPMG 같은 미국 회계법인은 아이슬란드 은행, 투자 회사를 감사 결과 문제가 없다고 했습니다. 미국 신용평가 회사에서도 최고 등급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아이슬란드 은행은 2008년 말 붕괴했고 6개월 만에 실업률은 세 배로 치솟습니다. 이 충격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예금한 돈을 못 찾는 사람이 많았으니까요. 이것이 아이슬란드만의 문제일까요? 미국 뉴욕은 더 하지 않을까요?
2008년 9월 미국 리먼브라더스의 파산 신청과 세계 최대 보험사 AIG의 몰락은 세계 경제를 흔들었습니다. 이 여파로 전 세계 주식 시장이 곤두박질치고 그 결과 세계경제는 침체되면서 전 세계는 수조 달러에 달하는 비용을 지불해야 했고 3천만 명이 실직하면서 미국의 부채는 두 배가 되었습니다. 순자산, 집값, 소득이 떨어지고 해고되면서 전 세계 5천만 명이 극빈자 신세가 됐으니 정말 엄청난 위기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고가 아니었고 걷잡을 수 없는 금융업 팽창이 원인이었습니다. 1980년대부터 이어진 미국 금융업계의 성장은 심각하고 연속적인 금융위기로 이어졌습니다. 위기 때마다 피해가 늘어났지만 금융업계는 더 많은 돈을 벌어들였습니다.
대공황 이후 미국 경제는 계속 성장했고 단 한차례의 금융위기도 겪지 않았습니다. 금융 규제가 엄격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은행은 고유의 은행 업무만 했고 고객 예금으로 투기하는 건 엄격히 금지되었습니다. 투자은행은 주식과 채권 매매를 할 수 있었지만 규모도 작았고 동업자 관계로 일했습니다.
1980년대 금융업 팽창으로 투자은행이 공기업화되면서 주주에게 큰돈이 들어갔습니다. 월스트리트 사람들은 부자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1981년 레이건 대통령이 재무부 장관으로 메릴린치 은행 CEO 도널드 리건을 임명했습니다. 경제학자 및 금융계 로비스트가 레이건 행정부를 지지했고 30년에 걸친 규제 완화가 시작됩니다. 1982년 레이건 정권은 저축과 융자회사 규제를 완화했고 이들은 고객의 돈으로 위험천만한 투자를 하게 됩니다. 80년대 말 저축은행, 융자회사 수백 개가 파산했고 국민 세금 1,240억 달러로 손실을 충당해야 했습니다. 책임자 수천 명이 공금 횡령으로 감옥에 갔고 가장 심한 건 링컨 세이빙스 CEO인 찰스 키팅이었습니다. 1985년 연방 규제 기관 조사가 시작되자 키팅은 앨런 그린스펀이라는 경제학자를 고용했습니다. 그린스펀은 감사원에 보낸 공문에 키팅의 사업 계획과 전문성을 높이 평가하며 키팅의 투자에 위험성이 없었다고 평가했습니다. 키팅은 그린스펀에게 4만 달러를 지불했지만 감옥에 갔습니다. 그리고 그린스펀은 레이건 대통령 때 미국 연방준비은행 총재로 임명됩니다. 클린턴 대통령은 그린스펀을 재신임했고 조지 부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다 90년대 말, 금융계가 몇 개 거대 회사로 합병됐습니다. 너무 대형화되면 금융계 전체를 위협할 수도 있었는데 클린턴 정부는 은행의 거대화를 도와줬습니다. 1998년 시티코프와 트래블러가 합병하여 시티그룹으로 최대 금융회사가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대공황 이후 만든 '글래스스티걸 법'에 위배됩니다. 은행이 고객 예금으로 위험한 투자를 못하게 하던 법이 무용지물이 된 것입니다. 이 합병은 불법이었지만 그린스펀은 침묵했고 연준이 1년간 묵인한 후 의회는 '그램 리치 블라일리 법'을 통과시킵니다. 이렇게 '글래스스티걸 법'은 무너지고 회사합병의 길이 열립니다.
그리고 90년대 말 또다시 위기가 닥칩니다. 투자은행은 인터넷 관련 주식에 엄청난 거품을 만들었고 2001년 충격이 옵니다. 투자 금액 5조 달러가 손실된 것입니다. 미국 증권 거래 위원회는 대공황 때 은행 규제를 위해 만들어진 기관이지만 제대로 한 일이 없습니다.
조사 결과 그들은 인터넷 회사 실패를 예감하고도 고객을 끌어들였고 애널리스트들은 투자 규모대로 성과급을 받았습니다. 규제 완화가 시작된 후 세계 최대 금융회사들은 돈 세탁, 고객 사기, 장부 조작으로 적발됐고 늘 반복되는 일이었습니다.
90년대 이후 금융 규제 완화와 기술 발전으로 금융 파생 상품이 폭발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경제학자, 은행은 그걸로 금융 시장이 안정된다고 했지만 실은 이 때문에 시장은 더욱 불안해졌습니다. 파생 상품을 이용 은행은 모든 걸 걸고 도박했고 기름값 등락, 회사 파산뿐 아니라 날씨에도 걸었습니다. 1990년대 말까지 규제 없는 금융시장에서 파생상품은 50조 달러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2001년 조지 부시가 대통령이 됐을 때 미국 금융계는 최고로 돈을 많이 벌었고 막강한 재력과 권력을 휘둘렀습니다.
예전에는 채무자가 매달 돈을 갚으면 돈 빌려준 사람에게 그 돈이 돌아갔고 다 갚으려면 몇십 년이 걸리니 채권자도 조심했습니다. 근데 이 새로운 제도에서는 채권자가 근저당권을 투자은행에 팔고 투자은행은 수천 개의 근저당과 다른 융자를 결합하여 파생금융상품을 만듭니다. 그것이 '부채담보부 증권' 즉 CDO입니다. 투자은행은 이 증권 CDO를 투자자에게 팝니다. 이 제도는 시한폭탄과 같습니다. 채권자는 채무자 융자 상환을 신경도 안 쓰다 보니 더 위험한 융자상품을 만듭니다. 투자은행도 관심 없습니다. 증권을 많이 팔아 이익만 챙기면 됩니다. 신용평가 회사는 투자은행에게 돈을 받는데 그 신용평가가 잘못돼도 책임지지 않습니다. 이들은 이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을 겁니다. 투자은행이 서브 프라임 융자를 선호한 건 높은 이율 때문입니다. 이로써 약탈적 대출이 증가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엄청난 서브 프라임 대출을 받았고 은행은 갚을 능력도 없는 사람에게 대출을 해준 것입니다. 갑자기 1년에 수천억 달러가 금융 증권 먹이사슬로 흘러갔고 누구든 대출을 받을 수 있었기에 사람들은 앞다퉈 집을 샀고 집값은 폭등했습니다. 결국 사상 최대의 거품경제가 만들어졌습니다.
월스트리트는 매해 보너스 챙기느라 바빴고 중개자와 CEO들도 돈을 쓸어 담았습니다. 리먼브라더스는 서브 프라임 최고 채권자가 됐고 CEO 리처드 풀드는 4억 8천5백만 달러를 벌었습니다. 주택 소유 자산 보호법을 통해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이를 규제할 수 있었지만 앨런 그린스펀은 그것을 거부했습니다. 증권 거래 위원회는 거품 현상이 계속되는 동안 투자은행을 조사하지 않았습니다. 거품 경제 기간 동안 은행은 엄청난 돈을 빌렸고 많은 융자를 받아 CDO를 창출했습니다.
신용 평가 기관 무디스, S&P, 피치는 위험한 상품에 안전 점수를 주고 수십억 달러를 벌었습니다. 무디스는 세계 최대 신용 평가 기관인데 2000년에서 2007년까지 수익이 4배로 급성장했습니다.
2008년이 되자 압류된 주택의 수가 폭증하고 금융증권화 먹이 사슬이 붕괴해서 투자 은행에 더 이상 대출 상품을 팔 수 없게 됐습니다. 대출 상황이 안 좋아지자 일부 채권자는 파산했습니다. CDO 시장이 붕괴되면서 투자은행이 껴 앉게 된 건 수천억 달러의 융자, CDO, 팔 수도 없는 부동산이었습니다. 미국의 경제 침체는 전 세계 경제 침체로 이어집니다. 미국, 유럽의 실업률은 10%에 육박하여 소비를 줄이자 중국의 공장 가동률이 떨어져 중국에서만 1천만 명 이상이 실직했습니다.
1980년대부터 미국은 불평등한 사회가 됐고 경제력도 약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제너럴 모터스, 크라이슬러, 미국 제철 등 미국 경제의 축을 이루던 기업들이 경영부실로 인해 외국 경쟁사에 뒤처졌고 중국이 경제를 개방하면서 미국 회사들은 비용 절감을 위해 해외 인력을 채용했습니다. 제조업이 쇠퇴하면서 다른 산업이 성장했는데 미국은 정보기술로 세계에서 앞서갔고 고임금 일자를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미국 세제 역시 가진 자들 위주로 개편되었습니다. 가장 극적인 것은 글렌 후버드가 고안한 세금 감면입니다. 그는 당시 부시 대통령의 경제 자문이었습니다. 부시 행정부는 투자 수입, 주식배당금 세금을 대폭 내렸고 부동산세도 내렸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혜택을 보는 사람은 상위 1%의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불균형이 커지면서 국민 생활은 더 많은 시간 일하고 빚만 늘어갑니다. 중산층이 자꾸 뒤로 뒤처지자 정치적인 측면에서 할 수 있는 건 대출을 쉽게 해주는 겁니다. 그렇게 90%의 사람들은 1980년에서 2007년 사이 경제적 기반을 잃었고 거의 모든 부는 1%에게로 간 겁니다. 2009년 실업률은 17년 만에 최고 기록을 세웠고 모건 스탠리는 직원에게 보너스 140억 달러를 지불했습니다. 골드만 삭스는 160억 이상을 지불했습니다. 몇십 년간 안전하게 유지됐던 미국 금융제도는 변해버렸습니다. 금융산업은 사회 공익에 등을 돌렸고 정치계를 부패시켰고 전 세계 경제를 위기로 내몰았습니다. 가까스로 재난은 면했지만 대가는 엄청났고 이제 겨우 회복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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